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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김경렬의 자본시장]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SEC 규제 영향
  • 작성일2023/07/10 10:57
  • 조회 54



 


(사진=김경렬 변호사)

가상자산은 분산원장기술 등을 기반으로 중앙 통제장치가 없는 탈중앙화의 성격을 갖는다. 비트코인이 2009년 발행된 이후 가상자산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던 배경도 탈중앙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에서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불공정거래에 관한 규제의 필요성도 함께 커져왔다. FTX 파산신청 사태는 일단 한 번 투자자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거대한 산업이라도 존속할 수 없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미국, EU 등 글로벌 주요국은 내부통제, 투자자 보호 등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해 시장 신뢰성 확보를 위한 규제체계 마련에 힘쓰고 있다. 이달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를 증권법 위반 혐의로 제소하며 이들이 상장한 19종의 암호화폐에 대해 ‘증권성’이 있다고 밝혔다.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가 규제 기관에 등록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증권 거래 기능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SEC 주장대로 해당 암호화폐의 증권성이 인정될 경우 금융당국의 강화된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

미국의 암호화폐 규제는 개리 겐슬러 SEC 의장이 4월14일 발표한 성명문에서 촉발됐다. SEC 및 개리 겐슬러 의장은 가상자산 산업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고, 해당 성명문의 내용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과 같이 탈중앙화 거래소도 이제 증권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전반적인 취지다.

미국은 1933년 증권법(Securities Act of 1933) 제2조에 증권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연방 대법원이 제시한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 의해 증권 개념이 구체화된다.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서는 ①공동사업 ②투자자의 금전 투자 ③타인의 노력 ④이윤의 기대라는 4가지 요건으로 구성돼 있고, 주된 쟁점인 “타인의 노력으로부터” 얻은 이익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탈중앙화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국내법상으로는 자본시장법에 이미 증권성에 관한 충분한 논의 끝에 내려진 결론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SEC의 판단 기준에 따르면 대부분의 토큰은 ‘증권’에 해당돼 SEC의 관할권 내에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상품’으로 분류된다는 것이 SEC 입장이다. 이에 위 19종의 암호화폐뿐만 아니라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코인) 대부분이 SEC의 단속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SEC의 알트코인 제재 소식에, 전체 가상자산 시장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비트코인 도미넌스’는 2년 만에 50%를 넘어섰다. 비트코인 약 14만개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마이크로 스트래티지의 설립자 마이클 세일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암호화폐 규제는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게 굉장한 호재가 될 것”이라며 비트코인 강세론을 폈고, 얼마 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SEC에 비트코인 현물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 신청한 것도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운용사가 직접 비트코인을 보유하면서 운영해야 하므로, SEC가 블랙록의 신청을 승인할 경우 비트코인 수요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5월11일 전체회의에서 가상자산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고 이용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안’(이하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의결됐다. 그동안 발의된 가상자산 관련 법안 19건을 통합·조정한 이 법안은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이용자의 예치금과 가상자산에 대한 관리 및 보호의무를 부과하고 가상자산 상장심사 기준과 내부규정을 마련하도록 해 이용자들을 보호하고 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 시세조종행위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해 가상자산시장의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려는 취지로 마련됐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진흥이라는 이유로 오랜 시간 외면받아온 ‘투자자 보호’ 규제체계를 정비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 가상자산 규제체계는 해외 주요국의 그것에 비해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입법미비, 규제공백 등의 문제가 있었다. EU의 암호자산시장규칙안(Markets in Crypto Asset Retulation, MICAR), 미국의 루미스 의원과 질리브란트 의원이 발의한 ‘책임있는 금융혁신법안’(Lummis-Gillibrand 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이 해외의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국내에선 가상자산 거래에 관한 사기적 행위에 대해 방문판매법, 유사수신행위법, 형법 및 특정경제범죄법(사기)을 적용해 규제 공백을 메워왔다. 이에 이번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의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통과는 벗어날 수 없는 시대 흐름인 것이다.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의 내용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가 핵심이므로, 가상자산사업자에게 ①고객 예치금의 예치·신탁 ②고객 가상자산과 동일종목·동일수량 보관 ③해킹·전산장애 등의 사고에 대비한 보험·공제 가입 또는 준비금 적립 ④가상자산 거래기록의 생성·보관 등을 의무화한다. 기본적인 규제기준은 ‘자본시장법’과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금융위원회가 주무부처가 돼 가상자산시장 및 사업자에 대해 감독과 검사를 한다.

가상자산 시장의 규모 및 이용자에 대한 파급력을 고려하면, 이제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지속가능성은 투자자의 신뢰를 통하여 확보할 수 있으므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금융당국의 합리적인 규제가 중요하다. 가상자산은 내재가치가 없어 적정가격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중앙화된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증권시장과 유사성이 많아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시장 신뢰를 위한 적절한 규제체계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명확한 기준을 갖춘 규제의 칼날이 작동한다면 해당 산업은 그 칼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혁신할 수 있다. 비록 단기간에는 규제로 인한 시장 위축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내 가상자산 시장 또한 금융당국과 법안의 규제 테두리 안에서 신뢰를 확보하며 성장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